[미성년 성범죄, 떡잎부터 수상하다②] 죄의식 없는 청소년 성범죄

[CBS사회부 조은정·이지혜·김정남 기자] 성범죄에서 미성년자는 더 이상 피해자의 모습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성범죄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무죄 방면되거나 피해자와의 합의로 불문에 부쳐지는 경우가 많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처벌 받지 않는 유년시절 성범죄의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 되살아 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CBS는 미성년자 성범죄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주]

청소년 성범죄가 성인 범죄와의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바로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경찰서에서 접수된 사례는 이같은 청소년 범죄의 양상을 잘 드러낸다.

김모(17)군 등 남학생 2명은 지난 1월 구로구 오류동에서 고등학생 A(16)양에게 술을 먹이고 인근 모텔로 유인한 뒤 차례로 성폭행했다. 하지만 이들의 집단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달 뒤, 한층 대담해진 남학생들은 이번에는 친구들을 더 모아 어린 여중생을 상대로 범행을 공모했다.

무려 6명의 남학생들이 14살 여중생에게 '눈치게임'으로 술을 먹인 뒤 같은 모텔로 끌고 가 집단으로 성폭행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의 경우 보통 또래 친구들끼리 범행을 공모해 아는 여학생들에게 술을 마신 뒤 집단으로 강간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래들이 함께 범행을 저질러 죄의식이 무딘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범죄 성향은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폭력범죄의 유형별 분석'에 따르면 성인 성범죄자들은 전체의 92.4%가 '단독'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반면, 청소년 성범죄자들은 48.2%가 '공범'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범행에 가담한 공범수도 성인(평균 1.77명)에 비해 청소년(평균 3.19명)이 월등히 많았다.

성인 성범죄자들은 공범이 1명인 경우가 62.3%로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청소년의 경우 1명이 27.9%, 2명 16.3%, 3명 20.9%, 4명 20.9%, 5명 이상도 14.0%이나 돼 여럿이서 같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청소년 성범죄는 우발적으로 저지르기보다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인 범죄자의 경우 60.4%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계획적'인 경우는 16.9%에 그쳤지만 청소년의 경우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42.9%로 가장 많아 대조를 이뤘다.

이밖에도 청소년들은 '놀이'나 '술'을 통해 여성을 유인했다고 답하는 비율이 성인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피해자에게 '협박이나 폭행'을 동원한 경우도 성인보다 다소 높게 나타나 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강간이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로 인식되는 순간, 또래 문화에 가담하는 데에 치중하게 돼 스스럼없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가해자 교육을 맡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 최김하나 활동가는 "또래 집단의 관계가 워낙 중요하다 보니 성범죄가 '그들만의 놀이'로 인식되면 개인적으로 나쁜 행동인지 알고 있어도 무리에 휩쓸려서 범행에 가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잘못인 것은 알지만 분위기를 깨기 싫었다', '친구들 간에 의리를 지키려고 했다', '친구에게 경험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등 친구와 연관해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최 활동가는 "인터넷의 발달로 자극적인 성문화에 노출돼 있지만 정작 아이들의 성에 대해 터부시하는 이중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성의식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면서 "성인과는 다르게 또래 집단에서 비롯되는 청소년 성범죄의 생리를 이해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09.15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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